본문 바로가기
이로의 글/잡담

[잡담] 케로네이시안 대륙 연대기 - 운곡의 전설

by EEZA 2026. 6. 17.
반응형

이 소설은 제미나이 ai를 사용하여 작성되었고, 이미지파일은 chat gpt를 사용하였습니다.

 

 

프롤로그: 자스프렌트 왕국 운곡의 전설편

 

제1장: 구름 골짜기의 시한폭탄들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 같은 자색 안개와 뭉게구름이 깊은 계곡을 통째로 집어삼킨 곳, 자스프렌트 왕국 최변방의 ‘운곡(雲谷)’.

구름 ‘운(구름)’ 자에 계곡 ‘곡(谷)’ 자를 쓰는 이름 그대로, 이곳은 일 년 내내 짙은 구름 안개에 가려져 대륙의 그 어떤 정보 기관이나 길드조차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철저한 베일 속의 은밀한 땅이었다. 외부인들에게는 그저 약초나 캐고 밭을 일구는 노인들이 모여 사는 평화롭고 몽환적인 시골 마을로만 여질 뿐이었다.

하지만 이 안개 낀 계곡 깊은 곳에는 과거 제국의 황권을 위협했던 광전사, 대륙을 오색 마력으로 뒤흔들었던 전설의 대마도사, 그리고 한 시대를 종결지었던 암살왕들이 모든 신분을 지운 채 숨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괴물 같은 영웅들의 손에서 길러진 가장 위험하고도 위대한 유산(遺産)들이 세상 밖으로 방출되는 날이었다.

마을은 아침부터 기묘한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은 일 년에 단 한 번 열리는 '운곡 마을 대축제'의 날이자,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올해의 순례 여행자 선발 이벤트’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자, 자! 다들 주목하시라! 올해 우리 운곡을 대표해 대륙으로 순례 여행을 떠날 영광의 주인공을 발표하겠네!"

촌장이 광장 단상 위에서 콧수염을 휘날리며 유쾌하게 소리쳤다. 광장에 모인 은퇴한 괴물들은 겉으로는 평범한 동네 주민처럼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매서운 시선은 단상 위로 걸어 나오는 한 소년에게 쏠려 있었다.

거친 붉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걸어 나오는 열네 살의 소년, 지너스. 그의 등 뒤에는 가죽 끈으로 단단히 고정된, 기묘할 정도로 넓고 거대한 롱소드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INTER ARMA SILENT LEGE (인터 아르마 실렌트 레게)
"전쟁 중에는 법이 침묵한다."

지너스는 이 거창한 명문 대신, 그저 귀찮다는 듯 ‘이아슬’이라는 짧은 약칭으로 불렀다.

지너스는 오직 한 가지 속성, '화염 마법'만을 다루는 규격 외의 천재였다. 타오르는 화염의 오라와 열기를 이아슬의 넓은 검신에 밀도 높게 압축하여 베어내는 마검술. 그는 화려한 다중 속성 마법은 부리지 못했으나, 순수한 파괴의 열량을 검로(劍路)에 싣는 폭발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더구나 '이아슬'은 희귀 성금속 ‘아스테리움(Asterium)’으로 제련된 보구였다. 주인의 마력에 완벽하게 공명하는 이 금속은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 그 운동 에너지를 고스란히 검신 내부에 임시 저장했다가, 주인의 화염 마력과 동화시켜 파괴적인 카운터로 방출하는 사기적인 메커니즘을 품고 있었다. 지너스는 찌르기보다 롱소드 특유의 묵직하고 유려한 ‘베기(Slashing)’를 극한으로 단련한 상태였다.

"그리고! 올해의 동행 순례자로 뽑힌 두 번째 주인공은... 프레아 양이네!"

촌장의 호명과 함께,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칠흑의 로브를 깊게 눌러쓴 소녀가 유령처럼 걸어 나왔다. 프레아.

세간에서는 그녀가 정체를 숨기기 위해 두른 칠흑의 로브 외형만 보고 ‘꼬맹이 마녀’라 부르며 비웃거나 두려워하지만, 실상은 4대 원소는 물론 상위 속성과 보조/치유 수식까지 대륙의 모든 마법 공식 자체를 통찰해 버린 10서클 마스터급의 천재 아크메이지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아직 가녀린 14세의 육체가 방대하고 거대한 신화급 마력의 질량을 온전히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육체의 한계로 인해 마나를 집중시키는 것 자체가 극도로 어려웠기에, 평소에는 늘 마나가 고갈된 것처럼 골골거리며 고서클 마법을 연발하면 속성 과부하로 각혈하기 일쑤였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육체적 한계 속에서도 마법 수식의 '완벽한 통찰'만으로 대륙의 법칙을 조롱하는 초월적인 가성비 마법을 구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흐흐흐... 축제 이벤트랍시고 나를 순례자로 뽑다니. 내 손으로 이 지겨운 안개 계곡을 통째로 불태워주길 바라는 눈치군."

로브 자락 사이로 보랏빛 눈동자를 빛내며 프레아가 오만하게 중얼거렸다. 마을 노인들은 "아이고, 우리 프레아가 사춘기인가 보네!"라며 껄껄 웃었지만, 눈빛만큼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을 완전히 떠나기 전, 두 사람에게는 각자 정리해야 할 소중한 인연이 있었다. 환호하는 축제 인파를 뒤로하고 지너스와 프레아는 잠시 발걸음을 흩트렸다.

지너스가 향한 곳은 구름 안개가 밀려오는 마을 뒷산의 고즈넉한 모퉁이였다. 자색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그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은 부모님의 무덤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지너스는 한참 동안 묘비 앞에 묵묵히 서 있다가, 등 뒤에 멘 거대한 롱소드 이아슬을 조심스럽게 풀어 무릎 위에 눕혔다. 그리고 부모님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맑은 계곡수를 한 잔 따라 올리며, 붉은 머리칼 사이로 다부진 안광을 빛내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 올해 운곡의 순례자로 뽑혔어요. 다들 축제 선발 이벤트라고 웃고 떠들지만…… 제겐 정말 큰 영광이에요."

지너스는 이아슬의 차가운 검신을 쓸어내렸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성금속 아스테리움의 미세한 공명이 마치 부모님의 온기처럼 느껴졌다.

"바깥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대단한 곳인지는 몰라요. 하지만 두 분의 아들답게, 그리고 운곡에서 배운 검 부끄럽지 않게 정말 열심히, 잘해보고 올게요. 지켜봐 주세요."

무덤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여 절을 올린 지너스는 이아슬을 다시 등에 단단히 동여맸다. 그의 넓은 어깨에는 한 층 더 묵직한 결의가 실려 있었다.

같은 시각, 마을 초입의 아담한 오두막집 앞은 프레아를 배웅하려는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평소에는 대륙의 법칙을 논하는 차가운 10서클 아크메이지였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그저 가녀린 막내딸일 뿐이었다.

"우리 막둥이, 가서 밥은 굶지 않으려나 몰라. 마나 집중 안 될 때 먹으라고 엄마가 약초 환 가득 싸뒀다!"
"무슨 소리에요 엄마! 막내 몸도 약한데 이 무거운 지팡이는 왜 들고 간다는 거야? 오빠가 대신 가 줄까, 프레아?"
"얘는! 아빠가 준 비상금은 가방에 꼭 넣고 다녀라!"

부모님은 물론, 건장한 언니와 오빠들이 번갈아 가며 프레아를 꽉 껴안는 통에 칠흑의 로브가 사정없이 구겨졌다. 육체의 한계 탓에 숨이 턱 막힌 프레아가 볼을 붉히며 버둥거렸다.

"아, 앗……! 숨 막혀요! 진짜 다들 왜 이래요? 나 꼬맹이 마녀 프레아라고요! 대륙의 마법 공식이 다 내 손바닥 안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새침하게 소리치며 가족들의 품을 빠져나온 프레아였지만, 정작 가방 가득 채워진 따뜻한 가방을 보니 코끝이 찡해졌다. 그녀는 가족들을 향해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우아하게 손을 흔들었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다들 건강하게 계세요. 언니, 오빠도 엄마 아빠 일 잘 돕고!"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과 아쉬움 가득한 눈빛을 뒤로한 채, 프레아는 가벼운, 하지만 평소보다 조금 더 힘찬 발걸음으로 오두막을 나섰다.

얼마 후, 자색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운곡 마을의 최외곽 경계선.

바깥 대륙으로 이어지는 거친 흙길 초입에는 세월에 닳고 닳은 오래된 석조 이정표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 이정표 밑에 먼저 도착해 이아슬의 힐트에 손을 얹은 채 기다리고 있던 지너스가, 저 멀리서 안개를 헤치며 걸어오는 칠흑의 로브를 발견하고 씩 웃었다.

"늦었잖아, 꼬맹이 마녀. 가족들이랑 눈물이라도 짜고 왔냐?"

"하! 누가 늦었다는 거야, 붉은 머리? 난 완벽한 마법적 시간 계산에 맞춰 도착한 거라고."

프레아가 지팡이를 툭 치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은연중에 알 수 없는 설렘과 투지가 감돌았다. 소꿉친구로서 서로의 결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천재였다.

"가자. 이 따분한 계곡을 벗어나서 진짜 세상을 보러."

이정표를 지나 세상 밖으로 길게 뻗은 도로를 향해, 한 명은 대지를 불태울 뜨거운 불꽃의 검을 쥐고, 한 명은 육체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신화급 마나를 품은 채, 두 천재는 운곡의 구름 안개를 뒤로하고 마침내 위대한 순례의 첫 발걸음을 함께 내디뎠다.

 


제2장: 비쿠숲의 위기, 포식자 비루루와 고블린의 기습

 

운곡의 자색 안개를 벗어난 두 사람이 마주한 다음 성소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 원시림 '비쿠숲'은 인간의 지도가 거부된 거대하고 침묵하는 심연이었다. 하늘을 가린 거대한 침엽수림 사이로 스산한 살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이 기괴한 침묵의 영역 한가운데에는, 대륙 최악의 전투 생물이라 불리는 성체 3미터의 포식자 ‘비루루’가 군림하고 있었다.

쿵…… 쿵……

지면을 타고 흐르는 둔탁하고 거대한 진동에 지너스가 즉시 날카로운 안광을 빛내며 등 뒤에 멘 이아슬의 힐트에 손을 올렸다. 침엽수림의 거목들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며 지청빛 털로 뒤덮인 괴수, 비루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흉포한 덩치와 달리 기괴할 정도의 지성을 지녀, 숲에 발을 들인 인간의 미세한 기척마저 기막히게 잡아내는 학살자였다.

"쳇…… 정면 승부는 마나 낭비야. 지너스, 움직이지 마."

지너스가 검을 뽑으려던 찰나, 뒤편에 선 프레아가 로브 자락을 드리우며 낮고 차가운 음성으로 제지했다. 육체의 한계로 인해 마나를 집중하기 어려운 그녀는 평소 자신의 마력을 극한으로 아껴야 했다.

프레아는 보랏빛 눈동자를 서늘하게 빛내며 지팡이를 대지에 가볍게 얹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하지만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음성으로 마법의 명칭을 읊조렸다.

"[프레아: 1서클 환각 마법 - 사일런트 베일 (Silent Veil)]"
"[프레아: 2서클 대기 마법 - 사운드 레스 (Sound Less)]"

그녀가 다루는 마법은 고작 기초적인 현상이었으나, 그 이면에 담긴 격조는 아득히 높았다. 멈추어 있는 대기와 안개의 흐름을 억지로 비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속삭여 자신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숲의 동화(同化) 마법이었다.

빛이 기묘하게 굴절되며 두 사람의 신형이 스르륵 흐려졌고, 거친 심장 박동 소리마저 숲의 바람 소리 속으로 완전히 묻혀버렸다. 비루루는 거대한 콧김을 뿜으며 두 사람의 코앞까지 다가와 공기를 음미했으나, 끝내 눈앞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반대편 수풀을 헤치며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하아…… 살았군. 가성비 하나는 끝내주는 마법이네."

지너스가 이아슬에서 손을 떼며 은형이 풀린 프레아를 돌아보았다. 프레아도 긴장이 풀린 듯 마법을 해제했다.

"당연한 결과야. 이 세상의 만물은 모두 저마다의 결을 가지고 있고, 난 그 결을 아주 살짝 비틀었을 뿐이니까. 그보다……."

프레아의 어두운 눈동자가 숲의 사각지대를 향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너스의 전신 돌기 세포가 본능적인 살기를 감지하고 꿈틀거렸다.

"조용히 해, 프레아. 진짜 피비린내는 이제 시작이니까."

샤아아악!

지너스의 경고와 동시에, 침엽수림의 그늘 속에서 초록색 피부의 고블린 수십 마리와 거구의 홉고블린 정예병들이 기습적으로 튀어나왔다. 우연히 마주친 인간들의 고기 냄새를 맡고 달려든 것이었다.

"이 초록색 버러지들이 감히……!"

쿠우우웅!

지너스가 등 뒤에서 거대한 롱소드 이아슬을 거칠게 뽑아 들었다. 동시에 최전방에 선 홉고블린 정예병이 아래에서 위로 휘두른 거대한 철퇴가 이아슬의 넓은 검신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앙————!

홉고블린의 무식한 완력은 압도적이었다. 지너스가 충격을 흘려내며 전방의 적을 대각선으로 크게 베어 넘기는 순간, 보이지 않는 우측 사각에서 다른 홉고블린의 철퇴가 벼락같이 날아들어 그의 왼쪽 어깨죽지를 노렸다.

그러나 지너스는 당황하지 않고 이아슬을 비스듬히 비껴 들어 철퇴의 궤적을 쳐냈다. 강철을 아득히 능가하는 성금속 아스테리움의 단단함 덕분에 칼날은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묵직한 타격의 운동 에너지가 이아슬의 검신 내부로 온전히 흡수되며 은은한 붉은 광취를 뿜어냈다.

그 충격의 잔흔 위로, 지너스는 마침내 화염의 주문을 나직하게 읊조리기 시작했다. 검 자루를 쥔 그의 손끝에서부터 격렬한 마나의 공명이 일어났다.

"[지너스: 4서클 화염 마법 - 플레임 인챈트 (Flame Enchant)]"

영창이 완료되는 찰나, 이아슬 내부에 흡수되어 있던 운동 에너지가 화염 마력과 완벽하게 동화되며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지너스는 롱소드 특유의 긴 사정거리와 원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칼을 뒤로 크게 빼어 들었다. 그리고 하단에서 상단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사선 베기를 감행했다.

스콰아아앙————!

단순히 화염을 두른 수준을 넘어, 검신 자체를 거대한 화염의 결정체로 치환해 버린 마검술의 위력이 폭발했다. 청백색의 거대한 불꽃 장막이 숲을 두 조각 내며 솟구쳤다. 하단에서 솟구친 단 한 번의 유려한 베기 공격에, 쇄도하던 홉고블린 세 마리의 상체가 대각선으로 부드럽게 잘려 나가며 공중에서 새까맣게 타올랐다. 지너스는 검을 회수하는 반동을 그대로 이용해 수평으로 크게 휘두르는 횡베기(Horizontal Slash)로 부드럽게 검로를 전환했다.

그 순간, 후미에 있던 고블린 주술사가 보라색 화염 탄환들을 프레아를 향해 폭사했다.

"시끄러운 날파리들이군."

프레아는 밀려드는 독화(毒火)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팡이를 대지에 가볍게 내리찍으며, 육체의 반발력을 정신력으로 찍어누른 채 마나를 해방했다. 짓눌린 호흡 사이로 가라앉은 영창이 흘러나왔다.

"[프레아: 3서클 대지 마법 - 싱크홀 늪 (Sinkhole Mire)]"

 



대지가 프레아의 거대한 의지에 굴복하듯 스스로 숨을 죽이며 내려앉았고, 주술사와 고블린들의 발밑은 순식간에 끝을 알 수 없는 끈적하고 깊은 진흙늪으로 변해버렸다. 신체 밀도가 낮은 일반 고블린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늪 속으로 완전히 침하해 버렸다.

하반신이 묶인 채 허우적거리는 주술사의 목을 향해, 지너스가 반동을 이용해 휘두른 이아슬의 수평 횡베기가 매끄럽게 스쳐 지나갔다.

스윽.

찰나의 잔흔과 함께 주술사의 목이 허공으로 동강 나 떨어졌다. 청백색 화염의 압도적인 열량 탓에 피 한 방울조차 튀지 않았고, 잘려 나간 단면은 즉시 까맣게 탄화되어 연기를 피워 올렸다. 완벽하고도 잔혹한 동시 제압이었다. 프레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자, 대지의 위용에 경악한 생존 고블린들은 무기를 버려둔 채 왔던 방향으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숲은 다시 처참한 선혈과 화염의 매캐한 냄새 속에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지너스가 이아슬에 주입했던 마나를 거두자, 검신을 사납게 휘감고 있던 청백색 불꽃이 스르륵 소멸했다. 플레임 인챈트의 지독한 잔열로 인해 아스테리움 검날 위에서는 고블린들의 핏물이 미처 묻지도 못한 채 치이익 소리를 내며 하얀 증기로 기화되고 있었다. 지너스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검신을 가볍게 한 번 털어낸 뒤, 가죽 칼집에 이아슬을 밀어 넣으며 툴툴거렸다.

"그만하자, 힘들어 죽겠네…… 빨리 다음 마을에 가서 쉬고 싶구만."

육체의 한계를 쥐어짜 주문을 외우고 화염을 뿜어낸 탓에 숨이 조금 가쁜 상태였다. 프레아 역시 연속된 마력 운용으로 인해 가슴을 살짝 움켜쥐며 각혈을 참아내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약한 소리 하지 마, 지너스. 난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마음 같아서는 종말의 불꽃을 불러와 이 조잡한 숲 전체를 재로 만들어버리고 싶으니까."

지너스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다음 목적지인 '다전 마을' 방향의 흙길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프레아 역시 지팡이를 짚으며, 어두운 숲의 그림자를 장막처럼 두른 채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나섰다.

제3장: 신속의 도적과 난장판 추격전


지너스와 프레아 일행이 도달한 곳은 교역의 중심지, '다전(茶田) 마을'이었다. 간단한 요기 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통을 구경하며 걸어가던 중, 지너스의 허리춤에서 미세한 스침이 느껴졌다.

지너스의 허리춤에서 전 재산이 든 가죽 주머니를 낚아챈 신속의 도적 에레네스트는 군중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야!! 거기 안 서?!"

 



분노한 지너스가 즉시 이아슬을 뽑아 들며 마력을 쥐어짜 냈다. 마검사로서 검과 신체를 동시에 가속하는 영창이 그의 입에서 번개처럼 터져 나왔다.

"[지너스: 4서클 화염 마법 - 화염 격동 (Flame Impulse)]"

콰아앙-!

지너스의 발끝과 이아슬의 검날에서 거대한 화염의 열풍이 부스터처럼 폭발했다. 그 반동을 이용해 탄환처럼 튕겨 나간 지너스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도약하며 에레네스트의 등을 향해 이아슬을 가르며 가벼운 참격 풍압을 날렸다. 하지만 에레네스트는 본능적인 직감으로 몸을 비틀었고, 지너스의 참격은 엉뚱하게도 길가에 있던 비단 장수의 천막 기둥을 깔끔하게 토막 냈다.

찌이이익-! 콰당탕!

화려한 비단 천막이 무너지며 형형색색의 원단들이 사방으로 날렸지만, 에레네스트는 그 천들을 징검다리 삼아 허공으로 솟구쳤다.

"놓칠 줄 알고!"
지너스의 뒤에서 프레아가 양손으로 마력을 집중하며 빠르게 영창을 읊조렸다.

"[프레아: 3서클 파이어 마법 - 파이어 볼 (Fire Ball)]"

프레아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간 세 발의 화염구가 에레네스트의 도주 경로를 향해 곡사를 그리며 날아갔다.

퍼엉! 퍼어엉!

"으악?! 미친, 마법사잖아?!"
에레네스트가 공중에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새우처럼 꺾었다. 화염구는 그를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가 근처 도자기 가판대에 정통으로 꽂혔다. 수십 개의 고급 도자기들이 폭발적인 열풍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상인들과 손님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납작 엎드렸고, 시장통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에레네스트는 깨진 도자기 파편이 공중에서 쏟아지는 와중에도,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가판대 지붕들을 딛고 좌우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폭풍처럼 질주했다. 지너스가 거리를 좁히며 연이어 횡베기로 검기를 날렸으나, 에레네스트는 대형 목재 물통 뒤로 몸을 숨겼다. 지너스의 검격에 물통이 두 동강 나며 폭포 같은 물이 쏟아졌고, 에레네스트는 그 틈을 타 과일 가판대를 통째로 발로 차서 지너스의 안면을 향해 날려버렸다.

"이게 진짜...!"
날아오는 사과와 배 무더기를 칼등으로 쳐내느라 지너스의 시야가 가려진 찰나, 프레아가 다시 한번 숨을 몰아쉬며 손을 뻗었다.

"[프레아: 4서클 바람 마법 - 진공의 칼날 (Vacuum Blade)]"

에레네스트의 옷자락과 가방 끈이 찢겨 나가며 그를 가두는 듯했으나, 그는 시장 골목길 벽면을 수직으로 타고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진공 구역을 탈출했다. 오히려 바람의 여파로 주변 노점들의 차양 막들이 모조리 찢겨 나가며 허공에 춤을 추었다.

사람은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지나간 자리에 풀 한 포기 남지 않는 난장판 추격전이었다. 결국 에레네스트는 그 정신없는 연기망과 아수라장을 엄폐물 삼아 골목길 깊숙한 곳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두 사람은 부서진 과일과 도자기 파편이 굴러다니는 차가운 골목 바닥에서, 전 재산을 털린 채 분통을 터뜨리며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따스한 햇살이 시장통을 비출 때쯤 눈을 뜬 두 사람은 마을 중앙의 우물가에서 기가 막힌 광경을 목격했다.

에레네스트는 훔친 돈으로 산 고급 가죽 의자에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맑은 아침 새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잔에 든 맑은 우물물을 와인처럼 부드럽게 음미하는 그 모습은 얄미움의 극치였다.

"드디어 잡았다, 이 쥐새끼 같은 자식아...!!!"

지너스가 이를 갈며 이아슬을 뽑아 들자, 에레네스트가 깜짝 놀라 찻잔을 떨어뜨리며 다시 허공으로 도약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뒤에서 지켜보던 프레아가 차갑게 손을 뻗었다. 프레아의 마법 체계에서 바람과 빙결은 분리되지 않으며, 물의 엔트로피 정지 메커니즘을 극한으로 비틀어 마찰력을 지워버리는 수식이었다.

"[프레아: 4서클 빙결 마법 - 마찰 계수 영도화 (Glacial Floor)]"

에레네스트의 발이 지면에 닿으려던 대리석 바닥 전체가 순식간에 절대영도 급의 매끄러운 빙판으로 변하며 마찰 계수가 0이 되었다. 아무리 신속의 도적이라 할지라도 물리 법칙 자체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콰당————탕-!

에레네스트는 뒤통수를 대리석 바닥에 사정없이 찧으며 꼴사납게 자빠졌다.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버둥거리는 그의 목줄기에, 지너스가 번개처럼 도약해 이아슬의 날카로운 칼날을 정확히 들이밀었다. 서슬 퍼런 검기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에레네스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히익?! 사, 살려주세요!"

조금 전까지 물을 음미하던 거만한 자태는 어디 가고, 에레네스트는 덥석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내가 눈이 멀어 마검사님과 대마법사님의 고귀한 지갑을 건드렸습니다! 진짜 죽을죄를 지었어요! 다시는, 정말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여기 돈, 돈 다 그대로 있습니다! 이자까지 보태서 드릴 테니 제발 그 무시무시한 칼 좀 치워주세요, 예?!"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가죽 주머니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바치는 에레네스트의 처량한 모습에, 지너스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위풍당당하던 '신속의 도적'의 너무나도 빠른 태세 전환에 프레아 역시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제4장: 사르데나 술집의 소동


에레네스트에게 회수한 가죽 주머니를 짤랑거리며, 세 사람은 우물가 근처에 위치한 '사르데나 술집'으로 향했다.

빛 한 점 없는 매끄러운 대머리에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에레네스트는 얼핏 보면 소년 같으면서도 깊은 눈빛을 보면 노련한 장인 같아 도무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기묘한 동안(童顔)이었다. 그는 술집 구석진 자리를 선점하더니, 특유의 싹싹하고 능청스러운 태도로 지너스에겐 달콤한 과일주를, 프레아에겐 신선한 주스를 대접하며 은근슬쩍 친한 척을 해댔다.

"아이고, 이거 다시 한번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제 눈이 잠시 삐었었나 봅니다. 그런데 두 분처럼 대단한 실력자들께서 이 시골 같은 다전 마을엔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술잔을 부딪치며 통성명을 나누는 사이, 지너스는 에레네스트가 이 지역의 생리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정보원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최근 마을의 소문에 대해 넌지시 물었다. 에레네스트는 잔을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최근 소식이라... 안 그래도 마을 분위기가 흉흉하긴 합니다. 실은 마을 외곽에 있는 '다전 차밭 던전' 때문에 난리가 났거든요. 원래는 질 좋은 찻잎이 가득해서 마을의 젖줄 같은 곳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던전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마력 파동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파로 온순하던 식물계 몬스터들이 폭주하고 있어요. 게다가 그 안에서 희귀한 고대 유물이 발견됐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돈주머니를 회수한 기쁨과 유익한 정보를 듣던 평화로운 주점의 공기도 잠시, 술집 너머로 밀도 높은 마나가 완벽하게 압축되어 흐르는 살기가 밀려왔다. 술집의 문이 스르륵 열리며 군중이 홍해처럼 갈라졌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굽이 사람 발목 높이쯤 되는 하이힐을 신은, 주름 하나 없는 희고 가냘픈 체구를 지닌 초동안 미녀였다.

그녀는 바로 에레네스트의 아내, 이졸다였다.

"어머, 당신. 또 가출해서 어린아이들의 돈주머니나 털고 있었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우아했으나 품고 있는 살기는 소름 끼쳤다.

스르륵, 털썩!

에레네스트는 이졸다의 얼굴을 확인한 바로 그 찰나,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바닥에 대가리를 박고 무릎을 꿇었다. 조금 전까지 능청스럽게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시나무 떨듯 격렬하게 떨며 양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여, 여보! 잘못했습니다! 그냥 잠깐 바람 좀 쐬려고 나온 것뿐입니다! 진짜입니다!"

 



이졸다가 눈길조차 주지 않자, 에레네스트는 넙치처럼 바닥을 기어 지너스의 등 뒤로 겨우 몸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지너스의 귓가에 하얗게 질린 입술로 다급하게 속삭였다.

"이사람은... 제 와이프입니다. 올해 딱 육십(60) 살이시죠..."
"방금 내 나이에 대해 뭐라고 속삭였니?"

이졸다가 미소 지으며 신형을 지웠다. 찰나의 순간, 지너스는 이아슬을 비스듬히 세워 4서클 화염 오라로 상단을 방어하려 했고, 프레아는 본능적인 위협을 느끼고 급히 손을 치켜들어 5서클 방어 장벽을 전개했다.

"[프레아: 5서클 차원 마법 - 위상 왜곡 결계 (Aegis Barrier)]"

공간의 밀도를 뒤틀어 물리적 접근을 차단하는 고위 결계였다. 그러나 이졸다의 물리적 속도와 무력은 두 천재의 감각을 아득히 상회했다. 이졸다는 프레아가 펼친 5서클 결계의 마나 흐름을 순수한 물리적 강기(괴력)로 쩍쩍 깨부수며 가볍게 통과하더니, 어느새 지너스의 등 뒤에 숨어 있던 에레네스트의 귀를 부드럽게 움켜쥐고 있었다.

"당신, 기품 있게 으깨지기 전에 따라오세요."
"아악! 여보 살려줘!"

그 압도적인 무력 앞에 지너스와 프레아는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정면으로 붙었다간 이아슬의 검날이 닿기도 전에 상하체가 분리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졸다는 비명을 지르는 에레네스트를 질질 끌고 순식간에 술집 밖으로 사라졌고, 에레네스트는 끌려가면서 마지막 유언처럼 소리쳤다.

"다전 차밭 정중앙 동굴로 가세요! 고대 던전인데, 깊은 곳에 유물이... 아악!"

두 사람은 이졸다가 남긴 서늘한 살기의 잔재 속에서, 에레네스트가 남긴 마지막 단서를 곱씹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전 차밭 정중앙의 고대 던전. 그곳이 그들의 다음 목적지였다.

 



제5장: 가라앉은 피비린내, 털린 던전의 생존자들

 

차밭 정중앙의 동굴 안으로 진입할수록 상태는 처참했다. 던전 상층의 포식자여야 할 지하 스토커들과 구울 수십 마리가 사지가 무참히 잘린 채 채 마르지 않은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지너스가 이아슬로 사체의 단면을 관찰했다.

"단면이 너무 깨끗해. 아주 날카로운 칼날에 도려내진 자국이야."
"조심해, 지너스. 누군가 이곳을 통째로 도살하고 지나갔어."

바로 그때, 상처 입은 채 숨어있던 거구의 구울 두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지너스의 사각을 향해 덤벼들었다. 지너스는 이아슬을 꽉 쥐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유려한 횡단 베기(Horizontal Slash)를 감행해 구울의 가슴팍을 화염으로 갈라버렸다.

동시에 프레아는 반대편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구울의 머리 위로 손을 겨누었다. 아직 다혼의 지팡이를 얻기 전이었기에 오롯이 자신의 마나 회로만을 한계까지 조율해야 했지만, 프레아는 주저 없이 숨겨둔 6서클 마법을 작렬시켰다.

"[프레아: 6서클 공간 마법 - 허수 공간 압착 (Void Crag)]"

공간 자체를 강제로 압착해 고립시킴으로써, 구울의 머리통이 차원 비틀림을 견디지 못하고 통째로 폭발했다. 완벽한 동시 제압이었다.

두 사람은 피비린내를 뚫고 최심부인 고대 성소에 도달했고, 마침내 그 압도적인 살기의 주인공들과 마주했다. 단상 위에서 초록빛과 붉은빛이 오묘하게 감도는 마력 결정체, '다혼(茶魂)'을 막 손에 쥐려던 두 여인이 돌아서서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붉은 살수단의 최정예이자 7서클 바람의 마도사인 '지나'와 괴력의 암살자 '레나'였다.

"어머? 쥐새끼 두 마리가 기어왔네?"

 



지나가 잔혹하게 웃으며 그들을 도발하는 순간, 성소 내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두 여인이 뿜어내는 정제된 살기에 지너스는 저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허투루 덤볐다간 순식간에 목이 날아갈 판국이었다.

지너스는 프레아와 찰나의 눈빛을 교환한 뒤, 상대의 시선이 프레아의 기묘한 마력 반응에 잠시 쏠린 틈을 타 이아슬의 검자루를 쥔 손에 은밀하게 마나를 주입했다. 소리 나게 불꽃을 터뜨리면 기습의 효과가 사라지기에, 오직 검신 안쪽의 회로만을 미세하게 공명시키는 극도의 제어력이었다.

"[지너스: 4서클 화염 마법 - 플레임 인챈트 (Flame Enchant)]"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아스테리움으로 제련된 이아슬의 검신을 따라 시붉은 열기가 신기루처럼 잔잔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언제든 폭발적인 참격을 내뿜을 수 있는 화염의 마력이 검에 깃든 순간이었다.

지너스가 무장을 채 끝마치기가 무섭게, 레나는 소리도 없이 지너스의 상단으로 파고들었다. 양손의 비수가 번뜩이며 지너스의 화염 검을 향해 사납게 쏟아졌다.

까강-! 캉! 카카강-!!

정교하고도 흉폭한 불협화음이 성소 안에 휘몰아쳤다. 레나의 참격에는 단 한 조각의 마법 수식도 없었지만,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미친 괴력이 실려 있었다. 단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지너스의 안면을 사정없이 몰아쳤다.

지너스는 이아슬의 넓은 검신을 사선으로 세워 레나의 첫 참격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흘려냈다. 그러나 레나는 단검의 반동을 이용해 신형을 가볍게 회전시키며 지너스의 하단을 향해 두 자루의 비수를 대각선으로 그어왔다. 지너스는 즉각 공중으로 몸을 띄워 날카로운 궤적을 회피함과 동시에, 착지와 함께 이아슬을 뒤집어 쥐며 레나의 목을 향해 매서운 역습을 감행했다.

스윽-!

레나는 짐승 같은 감각으로 상체를 뒤로 젖혀 지너스의 화염 검선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도리어 지너스의 거리가 좁혀진 찰나를 포착해 그의 복부를 무릎으로 걷어차며, 양손의 비수를 가위처럼 교차해 목덜미를 가차 없이 조여 왔다.

"치잇...!"

피할 공간이 없었다. 지너스는 급히 이아슬의 검신을 전면에 가로막아 레나의 합격(合擊)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콰르릉-!!!

순간, 지너스의 발밑 대지가 움푹 내려앉을 정도로 무식한 물리적 질량이 검신을 타고 쏟아졌다. 하지만 그 가공할 충격은 지너스의 육체로 전달되지 않았다. 성금속 아스테리움으로 제련된 이아슬의 검신이 레나의 무시무시한 운동 에너지를 고스란히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레나의 비수가 이아슬을 짓누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아슬의 검신에 새겨진 고대 룬 문자들이 기괴할 정도로 짙은 검붉은 광취를 뿜어내며 요동쳤다. 플레임 인챈트로 이미 예열되어 있던 화염 마력이 흡수된 충격 에너지와 격렬하게 동화되며 파괴적인 카운터를 터뜨릴 준비를 마친 것이다.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터질 듯한 열기와 인과율적 중압감에 레나의 차가운 눈동자가 처음으로 가늘게 떨렸다.

두 사람이 검을 맞대고 팽팽하게 대치한 절호의 찰나, 후방에 있던 지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너스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레나와 엮여 있는 지너스를 단숨에 끝장낼 심산이었다.

"[지나: 1서클 무속성 마법 - 매직 미사일 (Magic Missile)]"

푸른빛의 마력 탄환 수십 개가 기관총처럼 폭사되어 지너스의 사각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지너스가 고개를 급히 틀어 탄환들을 흘려내는 사이, 지나의 지팡이 끝에서 백색의 뇌전이 뱀처럼 비틀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지나: 3서클 전격 마법 - 라이트닝 (Lightning)]"

콰르릉-! 굉음과 함께 지너스의 발밑으로 잔혹한 전격이 내리꽂혔고, 지너스는 그 여파와 충격의 반동으로 레나의 압박에서 밀려나며 뒤로 거칠게 구를 수밖에 없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지나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올라간 순간, 이번에는 레나의 측면 어둠 속에서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들어왔다. 프레아의 기습이었다.

"[프레아: 3서클 화염 마법 - 파이어볼 (Fireball)]"

"레나, 피해...!"

지나의 다급한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대폭발을 일으킨 화염구는 레나의 매서운 추격 기동을 가차 없이 가로막으며 성소 벽면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비록 프레아의 출력이 제한되어 위력 자체는 평범한 3서클에 불과했으나, 지나와 레나의 완벽했던 연계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끊어버리고 지나의 시선을 완전히 분산시킨 치명적인 방해 공작이었다.

"이런... 감히...!"

자신의 조준을 흐트러뜨린 프레아에게 분노한 지나가 눈을 부릅뜨며 지팡이를 세차게 휘둘렀다.

"[지나: 7서클 바람 마법 - 실피드의 진공 BLADE STORM]"

동굴 전체를 통째로 조각내 버릴 듯한 잔혹한 진공 폭풍이 프레아를 향해 쇄도했다. 프레아는 입술을 깨물며 지팡이도 없이 오직 맨손으로 자신의 마나 회로를 극한까지 쥐어짜 내어 7서클 마법으로 맞대응했다.

"[프레아: 7서클 비전 마법 - 마나 역선조율 (Phase Dissolution)]"

몰아치는 진공 폭풍의 마나 파동을 실시간으로 역위상으로 상쇄시키는 고위 마법이었다. 프레아의 마력 총량이 부족했던 탓에 폭풍을 전부 지우지 못하고 결계 파편이 튀어 뺨에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렸지만, 지나의 7서클 대마법의 방향성을 완전히 비틀어 사방으로 분산시키는 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이아슬에 축적된 붉은 광취와 분산된 진공 폭풍의 여파가 성소 내부에서 동시에 폭발하며 사방의 암벽이 무서운 기세로 부서져 내렸다.

"레나! 주변이 무너져 내리려 해. 밖으로 유인한다!"

지나가 거대한 연기의 커튼을 폭발시켜 시야를 차단한 사이, 두 사람은 신속하게 동굴 밖으로 물러났다. 그 혼란한 연기망 속에서 지너스는 시각이 아닌 마력의 흐름을 좇아, 충격 여파로 단상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니던 결정체 '다혼'을 번개같이 가로챘다.

전리품을 확보한 두 사람은 무너져 내리는 동굴을 피해 겨우 몸을 이끌고 넓은 차밭이 펼쳐진 밖으로 향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제6장: 절체절명의 위기

 

 

동굴 밖의 대지는 이미 붉은 살수단의 단장, 카르엔의 무시무시한 오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거대한 중갑을 두르고 정령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최상급 중갑 정령 기사였다. 후퇴했던 지나와 레나가 그의 양옆에 가세하며, 마침내 2대 3의 처절한 난전이 발발했다.

카르엔이 거대한 워해머를 치켜들며 포문을 열었다.
"대지의 정령 노움이여, 대륙의 질량을 이 손에 쥐어다오! 불의 정령 살라만더여, 팽창하라!"

카르엔의 부름에 워해머가 노움의 권능으로 수십 배의 지각 질량을 품은 채 뿜어져 나왔고, 살라만더의 플라즈마 화염이 대지를 가르며 두 사람의 퇴로를 압박했다.

"지너스, 정면이야! 카르엔의 중갑 틈새를 노려!"
뒤편에서 지팡이를 치켜든 프레아가 눈동자를 빛내며 빠르게 외쳤다. 그녀는 단 10%의 마력 제한 속에서도 10서클의 통찰력을 발휘해, 카르엔이 부리는 노움의 지맥 흐름과 살라만더의 열기 궤적을 실시간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프레아: 2서클 바람 마법 - 윈드 슬래시 (Wind Slash)]

프레아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날카로운 진공의 바람 칼날이 카르엔의 거대한 워해머 측면을 정확히 타격했다. 출력은 약했지만 압축률을 극대화한 바람은 카르엔의 묵직한 내리찍기 궤적을 미세하게 비틀어버렸고, 완벽했던 중력 균형이 아주 찰나의 순간 무너졌다. 지너스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심장의 4서클 화염 마력을 격렬하게 회전시킨 지너스가 이아슬을 뽑아 들고 역으로 카르엔을 향해 지면을 박찼다.

"그까짓 똥개 정령들로 내 불꽃을 막겠다고?!"

지너스의 이아슬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강렬한 사선 베기(Diagonal Slash)를 감행했다. 청백색의 화염 검기가 폭발하며 카르엔이 전개한 살라만더의 플라즈마 장벽을 단숨에 두 조각으로 쪼개어 버렸다. 정면으로 마주한 두 괴물. 카르엔의 무식한 질량이 실린 워해머와 지너스의 이아슬이 공중에서 정면으로 격돌했다.

콰앙————!!!!

대지가 침하하며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이때 마력 공명성 금속인 이아슬(아스테리움)이 카르엔과 노움이 만들어낸 억 단위의 물리적 충격력을 순식간에 검신 내부로 완전히 흡수해 저장했다. 지너스는 그 반동을 이용해 유려한 수평 횡베기(Horizontal Slash)로 부드럽게 검로를 전환하며, 내부에 저장된 충격력을 자신의 4서클 화염 마법과 동화시켜 그대로 카르엔의 흉갑을 향해 카운터로 방출했다.

쿠구궁!

카르엔은 중갑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지너스의 무시무시한 화염 충격 패링에 밀려 대지 위로 서너 걸음 거칠게 물러섰다.

"이 꼬맹이들이……!"
카르엔이 경악하며 다시 워해머를 고쳐잡자, 위기감을 느낀 지나와 레나가 사각에서 동시에 기습을 감행했다. 지나의 7서클 바람 칼날이 진공의 그물망을 형성했고, 레나가 눈을 초월한 속도로 지너스의 목덜미를 향해 비수를 직선으로 찔러 넣었다.

프레아의 신들린 전장 통찰력이 곧바로 뒤를 받쳤다.

[프레아: 3서클 대기 마법 - 기류 마찰 편향]

[프레아: 2서클 바람 마법 - 윈드 페이스 (지너스 가속)]

지나가 날린 7서클 진공 칼날들의 궤적이 대기 마찰력의 뒤틀림으로 인해 지너스의 어깨너머로 스치듯 편향되었고, 동시에 바람의 가속 버프를 받은 지너스의 신형이 레나의 예측 속도보다 한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지너스는 롱소드 특유의 기다란 원심력을 활용해 사방으로 연속 사선 베기를 폭사했다. 이아슬이 그리는 화염의 궤적이 편향된 진공 칼날들을 공중에서 완벽히 폭발시켜 소멸시켰고, 레나의 비수를 벼락같이 튕겨냈다. 두 천재의 완벽한 호흡에 전황은 순식간에 요동쳤다.

여기에 프레아의 날카로운 공격 마법 연격이 적들의 사각을 찢고 들어갔다. 지너스가 레나의 비수를 튕겨내며 균형을 무너뜨린 찰나였다.

[프레아: 6서클 전격 마법 - 뇌격의 뱀 (Lightning Serpent)]

프레아의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온 파란 뇌격 줄기가 뱀처럼 허공을 똬리 틀며 지너스의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출력은 10%에 불과했으나 6서클 고유의 유도 매커니즘이 살아있던 뇌격은, 사각에서 기회를 노리던 살수 지나의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크악?!"

지나가 전신을 엄습하는 마비 전격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타 카르엔이 분노하며 대지의 질량을 담아 워해머를 지너스에게 내리찍으려 하자, 프레아의 지팡이가 거세게 요동쳤다. 출력은 제한되었으나 메커니즘만큼은 완전한 상위 서클의 물 마법이었다.

[프레아: 7서클 물 마법 - 고압 수류 참살포 (Hydro Pressure Cutter)]

물 속성 마법의 일인자답게 수류의 밀도를 극단적으로 압축해 바늘보다 얇은 초고압 레이저 형태로 발사된 마법이 카르엔의 워해머 자루를 정확히 겨냥했다. 콰앙! 직격당한 워해머 자루에 엄청난 압축 충격이 가해지며 카르엔의 공격 궤적은 허공으로 크게 빗나갔다.

그러나 난전이 너무 격렬했던 탓에 지너스의 4서클 화염 마법 수식이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프레아 역시 연속된 고위 마법 영창으로 일순간 호흡이 가빠졌다. 카르엔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빗나간 워해머를 억지로 회전시켜 살라만더의 열기로 지너스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마비에서 간신히 회복된 레나가 연기처럼 지너스를 우회해, 기어코 프레아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치켜들고 쇄도했다.

"프레아————!!!"

검이 묶인 절체절명의 순간, 지너스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육체가 부서지는 것을 감수하고 4서클 화염 마법의 출력을 한계점 위로 오버클럭했다. 발끝에서 폭발적인 열풍 추진력을 뿜어낸 그는 검을 놓아버린 채 몸을 날려 레나의 단검을 자신의 등으로 대신 받아냈다.

푸학-!

지너스의 등에 단검이 깊숙이 박혔다. 연이어 레나가 단검을 길게 그어버리자, 지너스의 등은 처참하게 찢어지며 선혈이 공중으로 비산했다. 지너스는 피를 토하며 프레아의 발밑으로 처절하게 쓰러졌다. 오직 동료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육체를 던진 순간이었다.

자신의 앞을 피로 물들이며 쓰러진 지너스의 모습을 본 순간, 프레아의 눈동자가 분노로 뒤집혔다. 마나가 부족해 픽픽 쓰러지던 소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으며 8서클의 고위 기적 마법과 물 속성 최고의 10서클 공격 마법을 동시에 발동시켰다.

[프레아: 8서클 신성 마법 - 인과 역전: 불사의 가호 (Sacred Phoenix Grace)]

[프레아: 10서클 물 마법 - 코키투스의 영겁빙하 (ABSOLUTE ZERO COCYTUS)]

하늘에서 순백한 빛무리가 쓰러진 지너스의 전신을 감쌌다. 찢겨 나갔던 등의 근육이 인과율을 역행하듯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재생되었다. 그와 동시에 지너스의 체내에 프레아의 가호 마력이 직접 주입되며, 지너스가 다루는 유일한 속성인 불의 마나는 진홍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신화급 업화(業火)의 영역으로 오버클럭되었다.

이와 동시에 대기 중의 모든 수류 원소가 엔트로피 정지 메커니즘을 일으켰다. 카르엔이 부리던 불의 정령 살라만더와 대지의 정령 노움의 신체 분자 결합마저 일순간에 얼려버렸다. 적들의 신경 신호와 정령술의 인과율마저 얼어붙어 세계의 엔트로피가 정지한 듯 고요하고 장엄한 연출이었다.

"지너스, 내 가호가 네 인과를 붙잡아두는 동안 넌 불사(不死)다. 저 무식한 통구이들을 정화해봐."

"으응? 뭐지 온몸에 힘이 넘치잖아? 좋아... 가자, 프레아!!"

지너스가 완전히 회복되어 일어서자, 순간 프레아의 마력 부족으로 인해 마법이 일순간 해제되어 버렸다. 다시 일어선 지너스가 이아슬을 쥐었다. 이아슬의 검신이 주인의 한계 돌파에 호응하듯 백색의 열선을 격렬하게 뿜어냈다.

지너스의 육체가 불타며 부서지는 속도보다, 프레아가 심어둔 가호와 물 속성 재생 에너지가 실시간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롱소드 특유의 기다란 원심력에 마나 가속이 더해져, 지너스는 상단에서 하단으로, 다시 하단에서 상단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X자 모양의 연속 사선 베기를 감행했다.

이미 두 천재의 완벽한 합격 무력을 뼈저리게 겪었던 카르엔과 지나, 레나는 신화급으로 오버클럭된 그의 검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쿠아아아아아앙————!!!!

태양에 필적하는 청백색 화염 폭풍이 카르엔이 자랑하던 거대한 워해머를 분자 단위로 쩍쩍 갈라버렸고, 지나와 레나 역시 그 무자비한 화염의 충격파와 베기 강기를 견디지 못하고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갔다.

"큭……."

지너스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마법의 힘으로 실시간 치료를 받았다 해도 결국 생체 에너지를 급격히 폭발시켰기 때문에 체력이 완전히 다 된 것이었다. 프레아도 한계를 넘은 마력 소모로 인해 많이 지쳐있었다.

"이, 이런 괴물 같은 년놈들을 보았나……!"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갔던 카르엔이 피를 토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분자 단위로 조각난 워해머의 파편이 대지에 처참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지나와 레나가 화염 충격파의 여파로 전신에 얕은 화상을 입은 채 신음하고 있었다. 지너스와 프레아는 이미 방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카르엔에게는 그들이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보였다. 카르엔은 결단을 내렸다.

"지나! 레나! 정신 차려라!"

그는 움직이지 않는 한쪽 팔로 자신의 묵직한 중갑옷의 버클을 거칠게 뜯어냈다. 가슴팍을 보호하던 거대한 강철 흉갑과 견갑이 대지 위로 쾅 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벗겨졌다. 중갑옷을 완전히 벗어던진 카르엔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묵직한 기사의 외양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은, 붉은 살수단의 단장이라는 직책에 걸맞은 섬뜩한 핏빛 자태였다. 얼굴을 빈틈없이 감싼 붉은 복면, 그리고 신체의 곡선과 근육의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전신의 붉은 레깅스까지.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직 은밀한 기동과 살육만을 위해 맞춤 제작된, 온통 붉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중갑은 그저 살수로서의 신형을 감추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카르엔은 남은 마나를 쥐어짜 내 허공에 손을 뻗었다. 마검사나 기사들은 보조/치유 마법을 정통으로 쓰지 못하지만, 그 역시 물 속성의 하위 정령 메커니즘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었다.

"물의 정령 운디네여, 분자 결합을 재구성하고 푸른 수류로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라!"

그의 외침과 함께 희미한 물의 하위 정령들이 나타나 지나와 레나는 화상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응급 치유를 받았다. 정령의 기운이 닿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지나와 레나가 카르엔의 양옆을 부축했다. 카르엔은 복면 너머로 지너스와 프레아를 매섭게 노려보며, 낮게 르릉거렸다.

"……오늘의 수치와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해주마. 다음번엔 결코 이런 요행은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친 카르엔은 두 살수를 이끌고 연기처럼 신형을 감추었다. 붉은 복장의 세 그림자는 순식간에 숲속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적들이 도망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지너스와 프레아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대지에 완전히 대자로 뻗어버렸다. 한참 동안의 휴식으로 간신히 손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지너스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이 자식들, 말은 아주 번지르르하게 하고 도망치네…… 그나저나 다혼은 무사하겠지?"

지너스는 주머니에서 다혼을 꺼내 확인했다. 프레아 역시 지팡이를 지탱하며 힘겹게 걸어와 다혼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두 천재의 치열한 사투 덕분에 다혼은 무사한 상태였다.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카르엔이라는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야."

"그래도 결국 우리가 이겼잖아? 가자, 프레아. 여기 계속 있다간 다른 살수들이 또 몰려올지도 몰라."

지너스는 이아슬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비록 몸은 만신창이에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서로를 향한 신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두터워진 상태였다.

"다혼은 네가 보관해."

지너스가 작은 돌조각 같은 다혼을 프레아에게 건네었다. 프레아는 아무 생각 없이 지팡이에 그것을 꽂아 넣었다. 갑자기 푸른빛이 지팡이에서 일렁이더니 지팡이에서 마나가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이..이건?"

지너지와 프레아가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프레아도 자연스레 손에서 지팡이를 놓치게 되었는데 주인을 잃은 지팡이는 어마어마한 마나와 공명하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둘은 알지 못했지만 다혼은 전설의 아티팩트 중 한 가지로, 세상에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프레아는 정신을 차리고 지팡이를 다시 손에 쥐었고, 그 많던 마나는 프레아에게로 흡수되듯 들어갔다. 심장의 금제 패널티로 늘 10% 출력에 시달리던 프레아의 내부에 마나가 회복되다 못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모든 마법을 온전한 100% 위력으로 시전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프레아는 곧바로 지팡이를 대지에 찔러 넣었다.

[프레아: 물 속성 9서클 마법 - 대양의 가호 (Oceanic Salvation)]

순간, 두 사람의 발밑에서부터 거대하고 맑은 푸른 수류가 뿜어져 나와 사방을 감싸는 치유의 성역을 형성했다. 넘쳐나는 수류의 마력 질량이 두 사람의 전신을 부드럽게 순환하며 찢어진 세포를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재생시키고, 바닥났던 기력과 체력을 무서운 속도로 채워 나갔다.

단 몇 초 만에 지너스와 프레아는 언제 싸웠냐는 듯 모든 생체 에너지를 완벽하게 회복했다. 둘은 다혼의 존재가 궁금해져 조사차 자스프렌트 왕국 중앙 마법 학회로 향했다.

 

 


제7장: 오만한 중앙 마법 학회와 9서클의 초고속 대연격전

 

 

다전 마을에서 얻은 수수께끼의 아티팩트 '다혼(茶魂)'을 조사하기 위해 자스프렌트 왕국 수도의 심장부, '중앙 마법 학회'에 들어선 지너스와 프레아의 앞을 수십 명의 엘리트 마법사들이 가로막았다. 그들의 삼엄한 포위망 전면으로 나선 것은 학회의 수석 상급 마법사, 줄리앙이었다.

"허락 없이 학회의 성역에 발을 들인 무지한 자들이여, 대륙 최고 정예들의 마법 수식에 짓눌려라!"

줄리앙이 지팡이를 치켜들자, 학회가 자랑하는 핵심 비기인 초고속 연사 전술이 포문을 열었다. 줄리앙의 턱관절이 기괴할 정도의 고속으로 진동하며 영창을 마하의 속도로 쪼개어 읊조리기 시작했다.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 속사포 랩 마법이었다.

"[줄리앙: 1서클 화염 마법 - 파이어 볼트 (Fire Bolt)]"
"[줄리앙: 2서클 무속성 마법 - 매직 미사일 (Magic Missile)]"
"[줄리앙: 2서클 바람 마법 - 윈드 스트라이크 (Wind Strike)]"

순간 로비 전체에 수십 발의 저서클 기초 마법들이 기관총처럼 폭사되어 쏟아졌다. 날아드는 마법 탄환들이 하나의 거대한 빛의 절벽처럼 밀려드는 타이밍. 지너스가 검을 뽑으려던 찰나, 프레아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오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프레아: 3서클 무속성 마법 - 마나 베리어 (Mana Barrier)]"

웅웅웅-! 프레아의 전면에 전개된 투명한 마력의 장벽이 줄리앙의 폭발적인 저서클 탄환들을 단 한 발의 허용도 없이 완벽하게 상쇄시키며 사방으로 도탄시켰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프레아의 덤덤한 시선에 줄리앙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수석 마법사인 자신의 랩 마법이 고작 3서클 기본 방어막에 완전히 막힌 굴욕 때문이었다.

"이 고결치 못한 쥐새끼들이 감히 학회의 마법을 모독하느냐!"

이성을 잃은 줄리앙이 지팡이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한 단계 더 높은 고위 서클의 주문들을 속사포처럼 뱉어내기 시작했다. 3~4서클의 중급 마법들이 마하의 속도로 결합되어 로비를 통째로 날려버릴 기세로 폭사되었다.

"[줄리앙: 3서클 전격 마법 - 라이트닝 볼트 (Lightning Bolt)]"
"[줄리앙: 4서클 대지 마법 - 스톤 바머 (Stone Bomber)]"

"어이, 이번엔 내 차례라고!"

지너스가 등 뒤의 이아슬을 거침없이 뽑아 들며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지너스는 이아슬 특유의 묵직하고 유려한 수평 횡단 베기(Horizontal Slash)를 광속으로 감행하며 검신에 마나를 주입했다.

"[지너스: 4서클 화염 마법 - 플레임 인챈트 (Flame Enchant)]"

성금속 아스테리움으로 제련된 이아슬의 탁월한 마력 공명 능력이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지너스는 쏟아지는 전격과 거대한 암석 탄환들이 채 폭발하기도 전에,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그 모든 충격력과 파괴 에너지를 이아슬의 검신 내부로 완전히 흡수해 저장했다. 이아슬에 새겨진 고대 룬 문자들이 중급 마법들의 막대한 물리적·마법적 질량을 빨아들이며 기괴할 정도로 시붉게 요동쳤다.

그리고 검을 회수하는 반동의 찰나, 지너스는 삼킨 에너지를 화염 마력과 강제로 동화시켜 역으로 방출했다.

콰아앙-!!!

인과율적으로 축적되었다가 터져 나온 파괴적인 카운터 폭풍에 줄리앙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지팡이를 놓치고 바닥을 처참하게 구르며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그 직후였다. 로비 정중앙의 거대한 대리석 문이 압도적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비산했다. 뿜어져 나오는 자색 마나의 폭풍 속에서, 대륙 마법계의 정점인 학회장 '베르만'이 9서클의 화려한 마도 로브를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랩 마법이 무엇인지 그 영혼에 새겨주마!"

베르만은 차원이 달랐다. 그는 무려 5서클 이상의 고위 대마법들을 마하의 속도로 쪼개어 읊조리는,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인간 재앙이었다. 그의 입술이 잔상으로 보일 만큼 미친 속도로 움직이자, 고위 마법 수식들이 기관총처럼 사방으로 연사 되었다.

"[베르만: 5서클 빙결 마법 - 블리자드 스톰 (Blizzard Storm)]"
"[베르만: 6서클 전격 마법 - 체인 라이트닝 버스트 (Chain Lightning Burst)]"
"[베르만: 7서클 화염 마법 - 헬파이어 란스 (Hellfire Lance)]"

쿠구구구궁————!!!!

거대한 로비 전체가 폭풍과 마법이 뒤엉킨 종말의 전장으로 변했다. 바로 그 순간, 지너스의 등 뒤에서 대기를 일순간 침묵시키는 거대한 마나의 진동이 발생했다. 프레아의 손에 쥐여진 다혼의 지팡이가 신형을 뿜어내며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게 공명했다. 마나 및 마력 100% 개방. 온전한 10서클 대마도사로서의 신화적인 권능이 해방된 순간이었다.

"[프레아: 10서클 해방 마법 - 쁘띠 원소 골렘 현신 (Summon Petit Golem)]"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온 순백의 마나 파도가 허공에 각각 화염, 물, 바람, 대지의 고유한 속성을 띤 네 마리의 조그맣고 귀여운 '쁘띠 원소 골렘'들을 현신시켰다. 앙증맞은 외형과 달리 한 마리 한 마리가 완벽한 10서클급 법칙의 질량을 품은 골렘들이 베르만을 향해 일제히 돌격했다.

하지만 대륙의 정점인 9서클 대마도사 베르만은 당황하지 않았다. 10서클의 초상적인 압력 앞에서도 그의 괴물 같은 통찰력은 순식간에 네 골렘의 속성을 간파했고, 학회장다운 신속의 영창 속도로 상성 마법들을 각각 쪼개어 연사하기 시작했다. 결합이 아닌, 네 개의 9서클 대마법이 독립적으로 폭발하는 전대미문의 신기(神技)였다.

"[베르만: 9서클 수류 마법 - 하이드로 디재스터 (Hydro Disaster)]"
"[베르만: 9서클 대지 마법 - 그랜드 타이탄 (Grand Titan)]"
"[베르만: 9서클 바람 마법 - 타이푼 드라이브 (Typhoon Drive)]"
"[베르만: 9서클 화염 마법 - 인페르노 버스트 (Inferno Burst)]"

콰아아앙-!! 콰과광-!!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호각의 주문 대결이었다. 베르만이 마하의 속도로 연사한 독립 주문들은 프레아의 네 마리 골렘을 정확한 철칙의 상성으로 맞받아쳤다.

프레아의 강력한 '화염 골렘'은 베르만이 뿜어낸 거대한 해일인 [하이드로 디재스터(물)]에 직격당해 비명과 함께 증발했다. 세찬 폭포수를 두른 '물 골렘'은 로비 바닥을 통째로 솟구치게 만든 [그랜드 타이탄(땅)]의 압도적인 토사 질량에 완전히 매몰되어 파괴되었다. 굳건한 방어력을 자랑하던 '대지 골렘'은 공간 자체를 칼날처럼 깎아내는 초고속 진공 폭풍인 [타이푼 드라이브(바람)]에 부딪혀 분자 단위로 갈려 나갔고, 마지막으로 대기를 가르던 '바람 골렘'은 산맥을 통째로 녹여버릴 듯한 업화인 [인페르노 버스트(불)]의 폭발적인 열기에 순식간에 집어삼켜져 소멸당했다.

10서클의 상위 법칙과, 그것을 완벽하게 공략하는 9서클의 철저한 역상성 공식이 1대 1로 매칭되며 격돌하자 학회 로비의 시공간이 기괴하게 일렁였다.

베르만이 완벽한 상성 제압으로 네 마리의 골렘을 전부 소멸시키며 승기를 잡으려던 바로 그 순간, 프레아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9서클급 대마법을 무려 네 개나 독립적으로 연속 시전하느라, 베르만의 마법진과 마나 회로에 순간적인 과부하와 미세한 딜레이가 발생한 찰나의 틈을 포착한 것이다.

"[프레아: 10서클 제어 마법 - 마력 공식 유린 (Formula Violation)]"

프레아의 매서운 10서클 권능이 작렬하자, 과부하 상태였던 베르만의 마법 공식 근간이 분자 단위로 무참히 찢겨 나갔다. 연쇄적으로 전개되던 잔여 수식들이 강제로 뒤틀리며 가혹한 마나 역류 현상이 베르만을 덮쳤고, 그는 핏방울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뒤로 사정없이 밀려났다.

"지너스! 내 마력의 길을 따라 베어라!"

"오냐!"

지너스가 마력의 공백을 포착하고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줄리앙과 베르만의 초고속 연격 속에서 흡수한 막대한 에너지가 이아슬의 검신에서 한계까지 요동치고 있었다.

"[지너스: 이아슬 오버드라이브 - 플라즈마 딜레이션 (Plasma Dilation)]"

지너스는 이아슬에 저장된 모든 마도 출력과 운동 에너지를 한순간에 폭발시키며, 아래에서 위로 거세게 치켜 베는 최후의 참격을 감행했다.

콰아아아아앙————!!!!

순백의 플라즈마 검기가 거대하게 팽창하며, 베르만이 본능적으로 전개한 최후의 고위 마법 장벽들마저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 버렸다.

스산한 침묵이 파괴된 로비를 지배했다. 지너스의 이아슬 끝은 베르만의 턱밑 고작 1밀리미터 앞에서 정확히 멈추어 섰다. 대륙의 정점이라 불리던 베르만은 자신의 자랑이던 다중 연사술과 상성 제압술이 더 높은 차원의 제어력과 무식한 검로에 의해 철저히 짓밟힌 것에 경악하며 처참하게 무릎을 꿇었다. 주변의 학회 마법사들 역시 무기를 떨어뜨린 채 완전히 압도당했다.

제8장: 최후의 전투

중앙 마법 학회 최심부, 지하 서고의 거대한 강철 문 앞. 공기가 일순간 흐려지더니, 발밑의 대리석 바닥이 수만 개의 파편으로 쪼개지며 솟구쳐 올랐다. 대지 자체가 거대한 의지를 갖고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듯한 초자연적인 압박감 속에서, 먼지 구덩이를 찢고 사내가 걸어 나왔다. 자스프렌트 왕국 최초이자 유일한 10서클 대지 아크메이지, '이츠키'였다.

이츠키는 엘프처럼 수려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노움처럼 작고 호리호리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체구는 비현실적일 만큼 완벽한 신체 비율을 자랑했고, 평소엔 머리 크기마저 아주 작은 편이라 묘한 신비감을 풍겼다.

그러나 10서클의 초월적인 이해도를 가진 프레아와 지너스의 눈에는 그 작은 몸집 뒤로 행성급 질량의 고밀도 대지 마나가 선명히 보였다. 이츠키가 허리춤에서 북유럽 신화의 유물인 한손형 신화급 망치 '묠니르'를 가볍게 꼬아 쥐자, 지너스가 이아슬을 뽑아 들었다.

"[지너스: 4서클 화염 마법 - 플레임 인챈트 (Flame Enchant)]"

이아슬의 검신을 따라 청백색의 플라즈마 화염이 휘몰아치며 완벽하게 부여되었다. 검을 단단히 쥐고 도약하는 지너스를 향해, 이츠키가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발을 내리찍었다.

"[이츠키: 6서클 대지 마법 - 타르타로스의 가시 (Spikes of Tartaros)]"

이츠키가 오른발로 대리석 바닥을 가볍게 내리찍자, 지너스의 동선을 따라 강철보다 단단한 바위 송곳 수십 개가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 뒤에서 지팡이를 치켜든 프레아가 신속하게 연계했다.

"[프레아: 7서클 보조 마법 - 크로노스 윈드 (Chronos Wind)]"

신속의 가호가 지너스의 신체에 깃들었다. 지너스는 초인적인 속도로 신형을 질주하며 플레임 인챈트가 걸린 이아슬로 치솟는 송곳의 허리를 단숨에 녹여내며 분쇄했다. 기세를 몰아 이츠키가 망치 묠니르를 허공으로 가볍게 던졌다.

"[이츠키: 7서클 중력 제어 - 메테오라 쇼크 (Meteora Shock)]"

공중에 비산하던 날카로운 암석 파편들이 묠니르가 뿜어내는 강력한 중력장 유도를 받아 지너스를 향해 무섭게 쇄도했다. 지너스가 검선으로 장막을 치기 전, 프레아가 한 발 빠르게 다혼의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프레아: 8서클 방어 마법 - 아쿠아 리플렉션 (Aqua Reflection)]"

지너스의 전면에 생성된 거대한 물의 장막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날아드는 암석 탄환들을 흡수하고 사방으로 비산시켰다. 부메랑처럼 궤도를 그리며 돌아온 망치를 이츠키가 낚아채는 찰나, 프레아가 곧바로 연계 공격 주문을 내지르는 2:1의 맹공이 펼쳐졌다.

"[프레아: 9서클 뇌전 마법 - 토르의 심판 (Judgment of Thor)]"

천장을 뚫고 내리꽂히는 거대한 청색 뇌전 강습이 이츠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10서클 아크메이지인 이츠키는 당황하는 대신, 오히려 기쁘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망치 묠니르를 뇌전의 중심부로 높게 치켜들었다. 묠니르의 신화적 고유 권능이 9서클의 뇌전 마력을 강제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망치 표면 위로 푸른 번개들이 뱀처럼 휘감기며 묠니르는 파괴적인 뇌전의 기운을 머금은 '뇌신 묠니르'로 변모했다.

 


에너지를 완전히 탈취당해 소멸해버린 프레아의 마법을 뒤로하고, 이츠키가 뇌전이 인챈트된 망치를 가볍게 휘둘렀다.

찌릿-!

망치 끝에서 튀어나온 번개 잔재가 지너스의 발밑 대리석을 까맣게 태워버렸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프레아와 지너스는 찰나의 숨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필살기였던 마법이, 순식간에 상대의 힘으로 치환되어버린 공포였다.

이츠키는 뇌전이 감도는 망치를 여유롭게 고쳐 잡으며,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쇄도해오는 지너스의 이아슬을 가볍게 쳐냈다. 망치와 검이 충돌하는 순간, 인챈트된 뇌전이 이아슬을 타고 흘러 들어가 지너스의 전신을 찌릿하게 마비시켰다.

깡-!!! 콰르릉!

이츠키의 묠니르와 지너스의 이아슬이 격돌하는 순간, 이츠키가 뒤로 도약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주문을 이었다.

"[이츠키: 8서클 절대 중력 - 그라비티 도메인 (Gravity Domain)]"

순식간에 서고 전체의 중력이 수 배 이상 폭증하며 지너스와 프레아의 신체를 동시에 짓눌렀다. 잇따라 벽면의 대리석들이 날카로운 화살로 변형되어 수백 개가 두 사람을 향해 빗발쳤다. 프레아는 입술을 깨물며 다혼의 지팡이가 가진 100%의 마나 효율을 끌어올려 자신과 지너스의 전면에 절대적인 구형 결계를 전개했다.

"[프레아: 9서클 결계 마법 - 아발론의 성벽 (Wall of Avalon)]"

콰콰콰콰쾅-!

대지 화살들이 결계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지만, 10서클의 절대적인 마나 밀도를 정면으로 받아낸 프레아의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누적된 과부하로 지너스는 피를 토했고, 프레아 역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지너스를 묶어버리는 대지의 손아귀가 튀어나오자, 프레아는 마지막 마나를 모두 폭발시키며 이 싸움을 끝낼 신화급 마법을 전개했다.

"지너스, 조금만 버텨라! 내 영혼을 갈아 넣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완벽한 신화를 보여줄 테니!"

프레아의 눈동자가 오색의 마력 광취로 찬란하게 타올랐다. 각성한 그녀의 마력이 한계까지 폭발했다.

"[프레아: 10서클 신화급 마법 - 에레멘탈 골렘 아미 (Elemental Golem Army)]"

쿠구구구구구구궁————!!!!

지하 최심부의 시공간이 뒤틀리며 태양의 화염 거신, 절대영도의 빙결 거인, 뇌전 기갑 골렘 등 최고위 전 속성 골렘 수백 마리가 대지를 찢고 솟구쳐 올랐다. 이에 이츠키가 안광을 번뜩이며 매섭게 묠니르를 전방으로 투척했다.

콰콰콰콰콰쾅-!

대지의 마나를 가득 머금은 채 무서운 기세로 회전하는 거대한 망치가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묠니르의 위력 앞에 수백 마리의 고위 골렘 중 수십 마리가 단 일격에 산산조각이 났다. 이츠키가 돌아오는 망치를 가볍게 낚아채자, 프레아가 다혼의 지팡이를 회전시키며 남은 골렘들의 마력 코어를 한곳으로 뭉쳤다.

"[프레아: 사원소 속성 합체 - 케오스 거신 (Chaos Titan)]"

부서진 파편들과 남은 군단이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단 하나의 거대한 초거신으로 합체했다. 불의 초신성, 물의 영겁빙하, 바람의 진공신풍, 대지의 강도를 탑재한 4원소의 결정체였다. 케오스 거신이 휘두른 혼돈의 주먹이 이츠키의 망치와 정면으로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작고 호리호리한 이츠키의 망치와 거대한 거신의 주먹이 허공에서 완벽하게 호각을 이루며 격돌했다. 지하 서고 전체가 완전히 와해되기 직전의 무지막지한 위력이 장관을 이루었다. 격렬한 균형 속에서 이츠키가 호탕하게 웃으며 망치를 거두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훌륭하구나! 그렇다면 나 역시 10서클 대지 마법의 궁극적 오의로 승부를 내는 게 예의겠지."

이츠키의 체내에서 잠자고 있던 대륙급의 질량을 가진 마나가 파도치기 시작했다. 이츠키가 눈을 뜨며, 자신의 온전한 마력을 오직 '머리(Head)'가 가진 비주얼적 질량으로 집중시켰다!

"[이츠키: 10서클 대지 마법 오의 - 대두권 (大頭拳)]"

지이이이이이이이잉——————!!!!

순간, 공간의 인과율이 정지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작고 비율이 좋았던 이츠키의 머리가, 대륙 전체를 한곳에 압축해 놓은 듯한 초우주적인 존재감과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아우라를 방출하며 거대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비주얼적인 대두(大頭)의 밀도가 공간의 중력을 왜곡시켰다.

머리로 행하는 체술에 가까우며, 그 거대한 아우라에서 뿜어져 나온 시각적·정신적 충격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스르르르륵...!

호각으로 맞서던 프레아의 4원소 합체 케오스 거신이, 이츠키의 대두권이 뿜어내는 존재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바스러져 먼지가 되어버렸다. 법칙 자체가 상위의 질량에 눌려 와해된 것이다.

"끄아아아악! 머리가... 너무 커서 시야가...!"

지너스는 비명을 지르며 이아슬을 떨어뜨렸고, 프레아 역시 그 압도적인 존재감의 밀도에 머리가 짓눌리는 듯한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뇌세포의 기억 영역 자체가 그 엄청난 질량에 밀려 일순간 백지화되는, '대두권'만의 가혹한 부작용이었다.

쾅!

순간, 인과율이 정지했다. 이츠키의 작은 머리가 대륙의 질량을 압축한 듯 거대하게 팽창하며 왜곡된 중력을 뿜어냈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의 밀도에 케오스 거신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지너스와 프레아는 그 충격으로 뇌세포의 기억 영역이 통째로 백지화되며 정신을 잃었다. 이츠키 또한 기술의 반동으로 함께 쓰러졌다.

얼마 후, 지팡이를 짚은 운곡마을의 늙은 촌장이 나타났다.

"순례 여행을 떠나랬더니, 기껏 찾아가서 왕국을 습격하다니.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로군."

촌장이 지팡이를 세 번 두드리며 읊조렸다.

"[촌장: 시간 역행 마법 - 시간의 굴레, 리와인드 (Rewind)]"

 



황금빛 파동이 서고를 덮쳤다. 파괴된 현장은 시간의 역행을 겪은 듯 완벽히 복구되었고, 학회원들의 기억에서 이 소란은 깨끗하게 도려내졌다. 촌장은 쓰러진 세 사람의 무기들을 갈무리해 품에 넣고, 그들을 보따리처럼 짊어졌다.

"너희 셋 다, 뇌가 텅 비었으니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기억을 잃은 세 명의 천재를 데리고, 촌장은 어둠 속 운곡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기막힌 운명은 이제 막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촌장이 기절한 세 사람을 보따리처럼 능숙하게 짊어지고 서고를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이 어둠 속에 완전히 잠기는 순간, 지하 서고의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마법적 여파가 아니었다. 촌장이 남기고 간 황금빛 잔상들이 허공에서 흩어지지 않고, 마치 이 세계의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운곡(雲谷)'이라는 두 글자를 공중에 새겼다.

운곡 마을. 그곳의 촌장이 지팡이를 휘두를 때마다 대륙의 인과율이 뒤틀린다. 과연 그는 누구인가? 그저 마을을 지키는 노인인가, 아니면 이 세계의 흐름을 기록하고 수정하는 '관리자'인가?

촌장은 자신의 품에 갈무리해 둔 무기들—묠니르, 이아슬, 다혼의 지팡이—을 힐끗 내려다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들이 순례를 마칠 때쯤이면, 대륙의 판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기억을 잃은 채 촌장에게 이끌려가는 세 명의 천재. 그들이 운곡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주할 진실은 무엇이며,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촌장의 진짜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지하 서고의 어둠 속에서, 촌장이 남긴 그림자만이 기묘하게 꿈틀거렸다.

대륙의 운명을 뒤흔들 거대한 수수께끼가, 이제 막 그 서막을 열고 있었다.

반응형